7. 영국 장식 미술 기행 -최지혜
- 책 리뷰
- 2019. 5. 22. 12:11
[최지혜]
‘장식 미술을 알면 일상이 더 풍요롭고, 더 멋스럽고, 더 즐거워진다’
앤티크의 성지인 영국 런던에서 영국의 장식 미술을 구석구석 탐식했다. 그 가운데에서 런던 시내와 교외에 있는 옛 저택과 박물관 열네 곳을 선정해, 18세기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장식 미술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준다.
간결하면서도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주는 글과 150여 점에 이르는 풍부한 사진으로, 16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유럽의 장식 미술 변천사와 함께 그들 고택과 그곳의 미술품에 얽힌 흥미로운 뒷얘기까지 살뜰히 담았다.
장식 미술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문화사며 건축과 그림 이야기도 풍성하고, 무엇보다 파란만장한 역사와 사람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게, 아름다운 영국의 저택에서 풍성한 이야기의 성찬을 즐기며 그곳의 여러 공간을 여유 있게 둘러보며 노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술사는 장식 미술을 도외시하고 홀대했다. 그림이나 조각 못지않게 장식 미술에도 시대의 사조며 작가의 예술혼이 투영되어 있는데, 상업적인 디자이너로 폄하되어 미술사의 뒤란에 묻혀 있다.
지은이는 그것이 안타까워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이름을 미술사에 일일이 호명하며, 그들의 진가를 밝혀 드러내고자 했다.
[제프리 박물관]
제프리 박물관은 1600년 무렵부터 현대까지의 런던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인 거실을 보여준다. 건물의 긴 형태를 따라 시대별로 거실이 간결하게 꾸며져 있어 둘러보기가 편하다. 400년 장식 미술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생활양식의 변천사를 공부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박물관 건물은 런던의 철물 조합이 운영하던,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을 위한 사설 구빈원으로 1714년에 설립되었다. 그 뒤 1911년 런던 시의회의 관리로 넘어갔다가, 1914에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제프리 박물관이라는 명칭은 구빈원 설립자이자 런던 시장을 지낸 ‘로버트 제프리 경’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19세기 리전시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한쪽에 안락한 소파를 놓고서 체스게임, 카드놀이, 바느질 같은 여가 생활을 즐기거나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굳어진다. 벽에서는 나무판이 사라지고 대신 아카선스 잎 같은 고전적인 무늬가 찍힌 벽지로 꾸몄다.
가구 또한 고대 그리스 디자인의 바탕을 둔 우아한 ‘그리스 양식’ 이 유행했다. 리전시 양식의 장식미술을 대표하는 ‘토마스 호프’가 당시의 디자인을 집대성하여 만든 책 <가정용 가구와 실내장식> 이 널리 읽혔고, 이로써 ‘실내 장식’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경향은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면 더욱 뚜렷해진다. 두꺼운 천을 씌운 안락의자들은 한눈에도 편해 보인다. 벽난로 위에 놓인 거울은 한 장으로 된 통유리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기술 발전의 한 면이라 하겠다.
거울 앞에는 ‘러스터’라고 부르는 유리 촛대를 비롯하여 여러 소품을 늘어놓았다. 천장에 매달린 가스등이 등잔과 함께 촛불을 대신했다. 그을음 때문에 날마다 하녀들이 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저녁을 맞이 할 수 있었다.
거실 한쪽에 놓인 피아노는 이 시대 거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품목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도 그런 장면이 몇 차례 나오듯이,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손님이 오거나 가족이 모이면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 부르기를 즐겼다.
거실 벽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와 판화며 그림이 빼곡하게 걸려있고, 장식장에는 여러 가지 예쁜 소품이 가득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 발전과 무역의 발달로 대영제국 최고의 번영기를 맞이한 이때는 무엇이든 많이 사들이고, 걸고, 놓아두는 것이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현대의 ‘미니멀리즘’ 과는 정반대인 ‘맥시멈리즘’ 이 이 시대의 실내장식의 뚜렷한 경향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후기에 이르러 ‘예술적 취향’과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하는, ‘미학 주의’가 나타난다. 문학과 회화에서 시작된 미학 주의의 영향으로, 집안의 실내장식에도 ‘예술적 취향’을 중시하기 시작했고, 예술적인 실내장식을 위한 길잡이 글도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전체적으로 색상을 조화롭게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학 주의가 빅토리아 시대의 모든 중산층을 대변하는 양식은 아니었지만,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맥닐 휘슬러,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에드워드 번-존스와 같은 문인과 화가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시도로써 이 시대의 장식 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점은 분명하다.
이 양식은 1850년대부터 유럽으로 유입된 일본의 회화와 디자인에도 영감을 얻은 바가 컸다. 일본에서 들어온 판화를 벽에 걸고, 가구 디자인은 가느다란 수직선과 수평선을 강조하고 여백이 많은 선반이나 장식장을 많이 썼다.
해바라기, 공작새 깃털, 부채 문양도 미학 주의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했다. 미학 주의자 들은 르네 마그리트의 ‘일상의 사물은 그것에 실용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강박적인 의지에서 해방되는 순간 지성적 의미를 갖게 된다’는 말마따나 공작 깃털이든 부채든 그저 보기에 좋은 것이면 쓰임새에 연연하지 않았다.
도자기와 은 제품들도 직접 일본을 다녀오거나 동양의 디자인을 자신의 방식대로 새롭게 풀어 가는 디자이너들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크리스토퍼 드레서’가 대표적인 디자이너로 꼽힌다. 그러나 그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대중성을 얻기에는 시대를 너무 앞선 탓인지 후대에 거의 잊혀졌다. 지금 봐도 그 디자인은 과감하고 혁신적이다.
이슬람 예술에 바탕을 둔 이른바 ‘예술 도자기’도 일본 제품들과 함께 이국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예술로 ‘미학 운동’에 함께 줄을 섰다.
커다란 열쇠 구멍 문양의 박물 현관문 너머로 내부가 슬쩍 비친다. 400년 동안의 삶을 여기에서 엿볼 수 있다는 의미다. 로고 하나에도 응축된 상징성이 돋보인다.
[리뷰]
앞에서 소개한 제프리 박물관 외에 여러 박물관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순수미술과 장식미술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이 책을 꼭 봤으면 한다. 물론 앤틱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영국에 가서 18세기 유럽의 장식미술을 내 눈으로 꼭 보고싶다.
지은이의 말처럼 작품을 얼마나 세심하게 관리하고 보존하며 또 그것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를 보면서 문화 선진국의 역량도 엿보고 싶다.
영국은 옛사람들이 남긴 많은 것을 한결같이 소중히 지키고, 문화 예술품을 복원하기 위해서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데 부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의 현대적인 모습만 봐와서 그런지 내가 잘 모르는 것인지 몰라도 우리도 우리의 옛것들을 잘 활용하고 보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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