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 책 리뷰
- 2019. 5. 29. 05:01
이 책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이미경 이미경 작가는 손끝 여문 외할머니의 솜씨를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만들고 그리는 걸 즐겼고, 자라서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둘째 아이를 갖고 퇴촌으로 이사해 산책을 다니다가 퇴촌 관음리 구멍가게에 마음을 빼앗긴 후, 20여 년 동안 전국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수백 점의 구멍가게 작품을 그려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 그리고 감동을 전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향한 안타까움으로 오늘도 작은 골목들을 누비며 구멍가게의 모습과 이야기를 정교한 펜화로 그려내고 있다.
이미경 님의 포근한 그림이 좋아서 소장한 책이다.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여름방학 때 서울에서 마산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동네에도 구멍가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작은 문방구, 슈퍼, ㅇㅇ상회 등 서울에서 보지 못했던 아기자기하고 사람 냄새나는 가게가 정말 많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다시 서울로 왔지만 그때 그 추억들이 가끔씩 생각이 난다. 다시 가보고 싶은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안 간 지 오래다. 가끔 이 책을 보며 그때 그 당시를 회상해 보곤 한다. 그리워라...
사랑방, 방앗간, 다방, 미용실, 이발소 등 이야기가 생겨나는 장소는 많지만 그중 으뜸은 뭐니뭐니 해도 구멍가게다.
신작로에 있는 구멍가게에는 남녀노소, 동네 사람, 외지인 할 것 없이 무수한 사람들이 오고 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생겨나 ‘그래서, 그랬대, 그러더라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가지처럼 자란다. 때로는 부풀려진 소문에 오해와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이야기는 지나간 시간의 기억을 풍성하게 하고, 풍성한 기억은 다채롭고 의미 있게 만든다.
소백산맥 줄기인 괴산을 지나 조렬산 아래 초록 병풍에 둘러싸인 연풍 마을. 유달리 높고 깊은 하늘에 바람은 살랑이고 은행나무는 샛노란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옆 폐쇄된 철길 곁에 홀로 남겨진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매표소 입구의 열차 운행 시간표는 해져 있고, 간단한 음식을 팔았던 진열대에는 회갈색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아 있었다. 커다란 거울 옆 격자창 사이로 물오른 산이 보였다. 조용한 골목을 걷자니 마음도 한가롭다.
집집마다 담장 안에는 주황색 감들이 저 높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선연한 색감은 말할 수 없이 아늑하다. 고향집 감나무에는 감이 풍년이고 구멍가게 감나무는 그리움이 가득 열렸다.
날카로운 펜 선의 긴나긴 여정이
만들어 내는 내 그림에
일필휘란 뜬구름 같은
먼 이야기일 뿐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구멍가게와 주인 어르신을 만나면서 삶을 대하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았고, 그로 인해 나 또한 조금씩 바뀌어 갔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한 울 파는 일’ 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에 가까이 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이어 온 삶에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연륜과 감동이 풍겨 온다.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구멍가게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영감과 교훈을 주신 구멍가게 주인 어르신들께 감사드리며, 작업실 한쪽에서 든든히 지켜봐 주고 응원해준 가족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책의 출간을 앞둔 지금, 온 나라가 허탈감에 빠져 있다. 이 책이 묵묵히 삶을 이어가며 한자리를 지켜 왔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2017년 1월에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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